2008년 07월 23일
현월(弦月, Crescent)
[ 1 ]
어둠에 흩날린 눈은 달빛에 비껴 유리의 반딧불처럼 투명이 반짝였다. 겨울의 시간이 부서진 눈은 세상의 색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은색이었다. 눈이 지상의 만물을 요람으로 덮어 세상은 시간마저 잠들어버린 듯 고요했다. 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로수가 몸을 흔들어 눈을 떨어냈다. 하늘로 날아오른 눈이 바람의 깃털로 홰치자 거리는 온통 은하수가 흘렀다.
달이 저물어 하늘은 별이 조각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눈빛(雪光)에 떠오른 어둠은 알몸이 되어 차가운 공기에 맑았다. 눈 내린 도심은 낡은 시간이 머물고 있는 망루처럼 고독했다.
- 제국의 치세다. 결국 조선도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였군.
- 그렇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은 이왕가(李王家)뿐입니다.
일본풍 유럽식 저택의 창 너머로 정기련(鄭起聯)은 거리를 내려 봤다. 방학이 된 학생들을 나르는 인력거가 바퀴자국을 내며 지나갔다. 지난 대한제국 시절, 고관대작들이 가마를 타고 지나던 신작로 위로 전동차가 깔리고 일인(日人)의 게다 소리가 요란했다. 중앙통 조선 총독부에는 높이 히노마루(日の丸)가 휘날렸다. 옛 경술년 융희(隆熙) 4년, 조선반도 반만년의 역사를 뒤엎고 세워진 조선 총독부가 이 땅을 천황의 번토로 한지 30년이 넘었다. 역사는 반도의 시간을 동강내는 통한의 시퍼런 날을 세웠고 총독부의 통치는 기나긴 칼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나라 없는 땅 위에서도 나라 없는 민족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무디게도 시대를 버텼다. 이제 조선의 백성들은 모두 늙거나 죽었는데 젊은이들은 천황의 치세 아래 황국신민으로 자라났다.
서력 1941년, 내지(內地=일본) 쇼와 16년 12월 1일. 연말이 되어 한성은 사람들로 어지럽고 들떠있었다. 기련은 무의식중에 바닥을 짚은 군도에 무게를 실었다. 이조(李朝)가 무너진 후 개화파의 말단에서 새로운 실세로 등장한 아버지를 배경에 스스로의 능력을 딛고서 중좌에 올랐다. 이제 33세,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하고 육군대학을 졸업한 이로서도 빠른 출세가도였다.
그는 세속의 궤도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내려다 본, 중일전쟁과 동란의 정세에도 힘겨우나마 평화로운 조선에 전율했다. 여전히 일본에 발이 묶인 조선은 차라리 안전할지도 모르는 낙담마저 일어났다.
- 그래, 쇼토쿠미야(昌徳宮) 전하께서는 이 일을 알고 계시느냐?
기련은 아버지가 말한 이왕 이은의 호칭에 미간을 구부렸다. 정대근(鄭代勤)은 분명 반생을 이조에 충성한 관습이 남아있었다고 하나 장남에게는 아버지의 태도가 단지 우유부단함으로 여겨졌다.
- 물론입니다. 이미 선을 취했고 홍사익 각하께서도 알고 계신 일입니다. 해군 녀석들이 어떻게 이걸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우리 손에 넣은 이상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가문이 말입니다.
기련은 아버지의 서재 앞에 하나의 청사진을 펼쳤다. 그것은 하나의 장갑화한 기계인형이었다. 장작을 쌓은 난로에서 불덩이가 일렁였다. 남자는 불의 그림자 속에서 웃었다.
- 높으신 분들도 이번 일로 해군과 드러내놓고 마찰을 일으키려 하진 않습니다. 설마 고작 항공모함의 설계도 몇 개와 기술진을 파견한 것으로 이런 물건을 얻을 줄은 몰랐습니다. 반면에 그 높으신 분들은 해군과 달리 별로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뭐, 여전히 총검돌격이 능사인줄 아는 바보들이라서. 덕분에 우리들이 이 기회를 잡긴 했습니다만.
대근은 책상을 두드렸다.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은 아들에게 부조리를 느꼈다. 혈연에서 괴리된 불쾌함이 혈관과 근육 속에 가라앉았다.
- 생산은 진행되고 있나. 적어도 100대는 마련되어야 한다.
- 우리 집안만이 아니라, 조선의 모든 유지들을 총력으로 모아 진행하는 일입니다. 도산 선생께서도 이번 일로 제국 내에서 우리들의 위치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면에 짙게 인쇄된 1식 기갑돌격병(一式 機甲突擊兵) 토치(トチ), 독일이 KAR(Kompakte Angriff Rüstung)란 명칭으로 개발한 신형병기를 받아들인 일본육군이 자체 개발한 차세대 육상병기였다. 영자(靈子)증기라 불리는 신물질 데멜트(Dehmelt) 입자. 미세한 전기충격과 온도변화로 폭발적인 부피변화를 일으키는 이 플라즈마는 이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형 병기를 가동하게 했고, 이해할 수 없는 전장 적응능력을 발휘했다.
제국해군의 독일파견 기술견학단을 싣고 돌아오던 유즈마루(柚子丸)호가 중국 국민당군의 어뢰정에 격침되었다. 육군에 대해 중국의 어뢰정에 비밀 유람단의 배가 격침되었단 사실을 은폐하려한 해군에 의해 그 잔존자료가 중국에서 참모로 근무하던 기련에게 넘어갔다. 육군의 중추는 다만 비웃을 뿐이었고 그것으로 모든 행동을 종료했다. 증류(蒸溜)처럼 그림자의 바닥마저 남지 않은 조치였다. 정예한 정신력과 총검돌격이야말로 전쟁의 본질이라 만들어내는 수뇌들에게 이 병기의 강행생산을 제안한 것은 기련이었다.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식민지 조선도 공업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방침과 주력 병기를 생산하는 본토에서의 취급은 불허한다는 방침으로, 동시에 거대한 사업을 전개해 내부의 반대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 기갑돌격병의 양산은 시작되었다.
- 37mm 전차포로 어느 정도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있나. 노몬한에서도 육군의 전차들은 패했을 뿐이야.
- 병기의 숫자라는 건 상황에 따라 바뀌는 법이죠. 이를 운영하기 위한 인원들도 꾸준히 양성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식 제국육군의 편제로 들어가 있습니다.
- ........네 말에 따르자면 대미 개전은 확실한 것이겠지. 제국의 운명은 상관없다. 문제는 우리들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것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은 아닙니다, 라고 침묵으로 말했다. 달빛에 창틀에 낀 서리가 푸르게 살아났다. 제국수도 동경의 정가는 어둠 속에서 어지러웠다. 황궁과 정부, 대본영을 오가는 고관대작들의 발걸음이 일각을 다투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의 그늘은 천황의 그림자였다.
-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이제 물러설 길이 없다. 대미교섭의 결과가 무엇인가? 지나사변(支那事変 = 중일전쟁)으로 얻어낸 지금의 영토마저 포기하겠단 것인가!
끝내 군부의 마지막 통보가 정부의 각 부처에 전해졌다. 대미교섭을 추진하던 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近衛 文桟) 공작(公爵)은 내각을 버리고 칩거했다.
- 마지막, 마지막 끈이 끊어졌다. 해가 떨어지는 하늘에 무엇이 남았으리.
경제난에 빠진 미합중국과 제국은 중국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그들의 경제회복을 위해선 중화대륙이란 거대한 시장이 서둘러 회복해야 했고 제국은 그 널따란 영토와 자원이 필요했다. 군 수뇌부는 대동아의 지도를 제국의 울타리로 감쌌다. 모든 것은 가능해 보였다.
- 유럽이야! 연합군은 독일을 상대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제국의 전력을 집결해 유럽과 아시아의 양대 전선을 구축한다면 이길 수 있다!
바람은 몇 년 간 끝 모르게 휘돌아 굽이쳤다. 수없이 커다란 광기가 증오의 수증기로 말라 먹구름으로 열국을 뒤덮었다. 대공황 이후 제국과 조선, 만주의 경영에 갈팡질팡하던 명치유신의 노신들은 이누카이(犬養) 수상의 참살로 군부에 몰살당했다. 천황의 대리자인 총리대신이 피도 마르지 않을 해군장교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옛날 대한제국을 번국으로 먹어치운 그들은 아시아 수호를 기치로 한 대동아 공영권의 깃발을 내세웠다. 사방을 적으로 둘러싸고도 알 수 없이 서로를 죽이며 그들 동포네 시체로 대륙을 덮은 내란의 중국과 서구열강의 수탈에 가엾은 동남아에 제국은 새로운 영화를 그렸다. 제국의 창검과 화포가 앞선 자들을 대신해 가지런히 그들을 짓밟고 도륙하며 쥐어짰다. 일제히 합쳐진 거대한 피의 흐름을 하나의 아시아에 두는 것이 대동아의 경영이었다. 제국은 마땅히 그 피가 태양인 스스로를 붉게 하며 그를 위한 것이라 믿었다.
천황은 하루에 세끼를 꼬박 먹었고, 이따금 그런가, 라고 말하며 신하들을 다그쳤다. 천황은 이따금 종종 히드라와 포자균류를 연구하며 흰 가운을 입고 현미경을 보다 하늘을 우러러 중얼거렸다.
그 소통할 수 없는 전쟁과 천황 사이에 선 조선을 두고, 기련은 자신이 딛고 선 땅의 지점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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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던 거였습니다. 한반도를 주제로 한 SF역사물 말이죠 -ㅅ-;;
제식명칭 : 1식 기갑돌격병 토치(トチ)
전고 : 3.95m
건조중량 : 5.8톤
완비중량 : 7.4톤
순항보행속도 : 15km
최고주파속도 : 43km
동력 : 특(特) 0식 전동기, 280마력
연료 : 중유 100리터
장갑두께 : 6~15mm
무장 : 100식 37mm 돌격포(95식 경전차의 37mm 전차포를 개량), 13mm ホ-103 돌격기관총, 1식 철갑도
기체해설
독일로부터 공여 받은 영자증기를 응용해 제작한 일본의 2번째 기갑돌격병. 기갑돌격병이란 단어는 - Kompakte Angriff Rüstung를 직역한 것이며 일본어로 돌격 - トツゲキ의 첫 글자인 ト와 일본어 어순으로 5번째 설계한 프레임으로 2번째 만들어진 기갑돌격병이란 뜻으로 토치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전에 설계된 97식 기갑돌격병 토타(トタ)는 무장의 빈약함과 장갑을 생략한 실험기로서 약 30기의 생산으로 완료. 1937년부터 본격적으로 설계에 들어가 1940년 대략적인 설계가 종료. 노획한 미국의 전차들을 대상으로 그 유용함이 인정되어 첫 주력 제식 기갑돌격병으로 채용되었다. 일본의 대미 개전 이전 약 78기가 배치되어 동남아 전선에 실전 투입되어 비로서 기갑돌격병의 가치를 인정받게 한다. 또한 야간전투에 특화된 기갑돌격병으로 알려져 있다.
토치는 독일의 원조 기갑돌격병과 비교해 장갑이 매우 얇고, 중거리 무장의 빈약함이 지적되고 있으나 이는 당시 정씨 가문이 공업이 빈약한 조선에서 이를 생산하려한 절대한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토치는 반응성이 이후의 기갑돌격병에 뒤지지 않게 뛰어났으며 정비의 용이함, 운용의 편이성, 뛰어난 대인전투능력(.....)으로 전쟁 중반 이후에도 보조용 기갑돌격병으로 꾸준히 생산되었다.
# by | 2008/07/23 00:57 | 현월(弦月, Crescent)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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